마르틴 부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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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틴 부버는 187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태어난 유대교 철학자이자 시오니스트이다. 그는 하시디즘 연구와 대화 철학으로 유명하며, 저서 《나와 너》에서 '나-너'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버는 시오니즘 운동에 참여하여 양민족 국가를 옹호했으며, 이스라엘 건국 후에는 팔레스타인 아랍인과의 공존을 주장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쳤으며, 종교 철학, 교육학, 윤리학 등에서 그의 사상이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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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부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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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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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르틴 부버 |
원어 이름 | 독일어: Martin Buber 히브리어: מרטין בובר 이디시어: מארטין בובער |
로마자 표기 | Maseutin Bubeo |
인물 정보 | |
출생 | 1878년 2월 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빈 |
사망 | 1965년 6월 13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
국적 |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스라엘 |
학력 | 빈 대학교 |
직업 | 철학자, 신학자, 교육자 |
관심 분야 | 존재론, 철학적 인간학 |
주요 사상 | '나-너' (Ich-Du) 및 '나-그것' (Ich-Es), 대화의 철학 |
영향 | 실존주의, 신 하시디즘 |
배우자 | 파울라 빈클러 |
자녀 | 라파엘 부버 |
경력 | |
주요 활동지 | 요한 볼프강 괴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교, 헤브라이 대학교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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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wikitext
마르틴 부버(히브리어: ''מָרְדֳּכַי,'' ''Mordechai'')는 187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3] 그는 16세기 랍비인 메이어 카첸엘렌보겐의 직계 후손이며, 카를 마르크스와도 친척 관계이다.[3]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렘베르크(현재 우크라이나 리비우)에서 미드라쉬와 랍비 문학 학자인 할아버지 솔로몬 부버의 손에서 자랐다.[3] 집에서는 이디시어와 독일어를 사용했다.[3]
1892년, 렘베르크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3] 개인적인 종교적 위기를 겪으며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 이마누엘 칸트,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를 읽고 철학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4] 1896년에는 빈 대학교에서 철학, 미술사, 독일학, 어원학을 공부했다.[4]
1898년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회의와 조직 활동을 시작했고, 1899년 취리히에서 공부하던 중 미래의 아내 파울라 윙클러를 만났다.[5]
젊은 시절, 마르틴 부버는 시오니즘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 때문에 테오도어 헤르츨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15] 헤르츨은 시오니즘을 종교적 목적을 가진 운동으로 보지 않았지만, 부버는 시오니즘이 사회적, 영적 풍요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다.[15] 예를 들어, 부버는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된 후 유대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요한 23세가 가톨릭 교회를 위해 했던 일을 유대교를 위해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15] 헤르츨과 부버는 서로 존중하면서도 반대하며 각자의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 1902년 부버는 시온주의 운동의 핵심 기관지인 주간지 ''디 벨트''의 편집자가 되었으나, 1년 후 하시디즘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시온주의 조직 활동에서 물러나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16] 1904년에는 야코프 뵈메와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에 관한 논문인 ''개별화 문제의 역사에 대한 기여''를 발표했다.[16]
1910년 "그와 우리"라는 에세이에서 부버는 자신과 1904년에 사망한 헤르츨을 시오니즘에 대한 관점에서 정반대로 묘사했다. 부버는 헤르츨을 "근본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으로, 행동 충동이 강해 지식을 위한 지식 습득을 막는다고 묘사했다. 반면, 부버 자신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유대인을 돕고 자유와 안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17] 또한, 부버는 헤르츨과 하시디즘의 창시자인 바알 셈 토브의 유사점을 제시하며, 둘 다 유대 민족 재건을 추구했지만 접근 방식이 달랐다고 주장했다. 헤르츨은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바알 셈 토브는 종교를 통해 직접적으로 변화를 추구했다.[17]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을 계기로 부버는 1915년 독일 철학자 헤르만 코헨과 민족주의와 시오니즘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18] 코헨은 메시아적 원칙에 기반하여 유대인 소수가 독일 국가 정체성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반면, 부버는 "유대교는 메시아적인 인류에 받아들여져 녹아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 민족이 메시아적인 인류가 등장하기 위해 현대 인류 사이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19]
1916년 "개념과 현실"이라는 편지에서 부버는 시온주의 운동 내의 민족주의, 메시아주의, 히브리어 문제를 다루었다.[20] 그는 민족주의는 자연 현상이 아니며, 시오니즘은 민족주의가 아닌 종교성에 중심을 둔 운동이라고 주장했다.[21] 또한, 시오니즘 내의 메시아 운동은 디아스포라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유대인과 반시오니스트 세력에 의해 가려져 있다고 보았다.[22] 히브리어의 중요성에 대해 부버는 "히브리어는 무엇보다도 일상어가 아니라 유대교의 숭고한 가치를 완전히 흡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믿었다.[23]
1920년대 초, 부버는 양민족 유대-아랍 국가를 옹호하며, 유대인들이 "아랍 민족과 평화와 형제애 속에서 살고, 공통의 조국을 두 민족 모두 자유로운 발전을 할 수 있는 공화국으로 발전시키려는 열망"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24] 그는 시오니즘을 단순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아랍인에 대한 유대인의 지배로 특징지어지지 않는 모범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25] 그는 문화 시오니스트인 아하드 하암의 영향을 받았다.[25] 1925년, 그는 유다 레온 매그너스와 함께 양민족 국가 건설을 옹호하는 단체인 브리트 샬롬 (평화의 언약)을 창설하는 데 관여했다.[25]
1929년 에세이 "팔레스타인에서의 민족의 고향과 민족 정책"에서 부버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인의 권리를 탐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국가를 건설할 시오니스트의 권리가 고대 조상과의 연결, 유대인들이 최근 몇 년 동안 토지를 개척해 온 사실, 유대 국가가 유대교의 문화적 중심지이자 새로운 사회 조직을 창조하기 위한 모델(예: 키부츠)로서 제공하는 미래 전망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27] 부버는 생존을 위해 불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불의가 없이는 삶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삶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순간 시작된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강요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28] 그는 이 관점을 사용하여 잠재적 공존과 민족적 독립의 조합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양민족주의를 옹호했다.[29]
1905년부터 부버는 출판사 뤼텐 & 로닝에서 강사로 일하며 사회 심리학 모노그래프 시리즈인 ''Die Gesellschaft (Schriftenreihe)/Die Gesellschaftde''의 완성을 시작하고 감독했다. 1916년, 그는 베를린에서 헤펜하임으로 이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유대인 전국 위원회(Jewish National Committee)를 설립하여 동유럽 유대인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35] 또한, 1924년까지 유대 월간지인 ''데어 유데(Der Jude)'' (독일어로 "유대인")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1921년, 부버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와 긴밀한 관계를 시작했고, 1922년에는 로젠츠바이크의 유대교 학습 하우스(Lehrhaus)에서 협력했다.[36]
1923년, 부버는 존재에 관한 유명한 에세이인 ''나와 너(Ich und Du)'' (나중에 영어로 ''I and Thou''로 번역됨)를 썼다. 1925년, 그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와 함께 히브리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번역을 ''Verdeutschung'' ("독일어화")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학적인 독일어를 항상 사용하지 않고, 다가치 히브리어 원본을 존중하기 위해 새롭고 역동적인 동등한 어구를 찾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1926년과 1930년 사이에 부버는 분기별로 발행되는 ''디 크레아투어''(Die Kreatur) ("창조물")를 공동 편집했다.[37]
1930년, 부버는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Johann Wolfgang Goethe University Frankfurt am Main)의 명예 교수가 되었으나,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에 권력을 잡자 항의의 의미로 교수직에서 사임했다. 1933년 10월 4일, 나치 당국은 그에게 강의를 금지했고, 1935년에는 ''Reichsschrifttumskammer''(국가 사회주의 작가 협회)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유대인 성인 교육 중앙 사무소를 설립하여 독일 정부가 유대인에게 공교육 참여를 금지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38] 나치 행정부는 이 기관을 점점 더 방해했다.
1938년, 부버는 독일을 떠나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 정착했다. 그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인류학 및 소개 사회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가 첫 학기 동안 진행한 강의는 책 ''인간의 문제'' (''Das Problem des Menschen'')로 출판되었다.[39][40] 이 강의에서 그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철학적 인류학에서 중심적인 질문이 되었는지 논의했다.[41] 그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문제와 아랍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했으며, 그의 성경, 철학 및 하세딕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과 유대인을 위한 이원적 국가를 목표로 하는 단체인 ''이후드(Ihud)''의 회원이 되었다.
1938년 예루살렘으로 이주한[38] 부버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을 강의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39][40] 그는 시오니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고, 정치 참여를 늘렸다.[30] 1942년에는 이중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이후드당을 공동 설립했다.[30] 그는 하임 바이츠만, 막스 브로드, 후고 베르그만, 펠릭스 벨츠 등 유럽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시오니스트 및 철학자들과 수십 년간 우정을 나누었다.[30]
부버는 1948년 논문 "시오니즘과 시오니즘"에서 문화적 시오니즘과 정치적 시오니즘의 경쟁적인 경향을 평가했다.[30] 그는 "진정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것"과 "정상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제시하며, "정상"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에는 토지, 언어, 독립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31] 부버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데 성공할수록 영적, 문화적 부활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정치 구조를 둘러싼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31]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부버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더 넓은 "근동" 국가 연합에 참여할 것을 옹호했다.[32] 그는 이스라엘이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고향을 개발하고 공유된 문제의 연방 관리를 수행하는 사업에 모두 연합할 수 있는" "근동"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33] 그는 "그 성약에 힘입어 우리는 다시 한번 근동 국가 연합으로 돌아가 근동 경제에 통합된 경제를 건설하고, 근동의 삶의 틀 안에서 정책을 수행하며, 신의 뜻에 따라 '살아있는 사상'을 다시 한번 근동에서 세상으로 내보내기를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33]
부버는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의 많은 정책과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특히 아랍 난민의 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과 같은 최고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3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부버는 유럽과 미국에서 강연 투어를 시작했다. 1952년에는 융(Jung)과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했다.[43] 1965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 (1878년 ~ 1898년)
마르틴 부버(히브리어: ''מָרְדֳּכַי,'' ''Mordechai'')는 187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났다.[3] 그는 16세기 랍비인 메이어 카첸엘렌보겐의 직계 후손이며, 카를 마르크스와도 친척 관계이다.[3]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렘베르크(현재 우크라이나 리비우)에서 미드라쉬와 랍비 문학 학자인 할아버지 솔로몬 부버의 손에서 자랐다.[3] 집에서는 이디시어와 독일어를 사용했다.[3]1892년, 렘베르크에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3] 개인적인 종교적 위기를 겪으며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에서 벗어나 이마누엘 칸트, 쇠렌 키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를 읽고 철학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4] 1896년에는 빈 대학교에서 철학, 미술사, 독일학, 어원학을 공부했다.[4]
1898년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하여 회의와 조직 활동을 시작했고, 1899년 취리히에서 공부하던 중 미래의 아내 파울라 윙클러를 만났다.[5]
2. 2. 시온주의 운동 참여와 학문 연구 (1898년 ~ 1938년)
젊은 시절, 마르틴 부버는 시오니즘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 때문에 테오도어 헤르츨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15] 헤르츨은 시오니즘을 종교적 목적을 가진 운동으로 보지 않았지만, 부버는 시오니즘이 사회적, 영적 풍요를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다.[15] 예를 들어, 부버는 이스라엘 국가가 형성된 후 유대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요한 23세가 가톨릭 교회를 위해 했던 일을 유대교를 위해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15] 헤르츨과 부버는 서로 존중하면서도 반대하며 각자의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 1902년 부버는 시온주의 운동의 핵심 기관지인 주간지 ''디 벨트''의 편집자가 되었으나, 1년 후 하시디즘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시온주의 조직 활동에서 물러나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16] 1904년에는 야코프 뵈메와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에 관한 논문인 ''개별화 문제의 역사에 대한 기여''를 발표했다.[16]1910년 "그와 우리"라는 에세이에서 부버는 자신과 1904년에 사망한 헤르츨을 시오니즘에 대한 관점에서 정반대로 묘사했다. 부버는 헤르츨을 "근본적으로 활동적인 사람"으로, 행동 충동이 강해 지식을 위한 지식 습득을 막는다고 묘사했다. 반면, 부버 자신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유대인을 돕고 자유와 안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이끌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17] 또한, 부버는 헤르츨과 하시디즘의 창시자인 바알 셈 토브의 유사점을 제시하며, 둘 다 유대 민족 재건을 추구했지만 접근 방식이 달랐다고 주장했다. 헤르츨은 역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바알 셈 토브는 종교를 통해 직접적으로 변화를 추구했다.[17]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을 계기로 부버는 1915년 독일 철학자 헤르만 코헨과 민족주의와 시오니즘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18] 코헨은 메시아적 원칙에 기반하여 유대인 소수가 독일 국가 정체성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반면, 부버는 "유대교는 메시아적인 인류에 받아들여져 녹아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 민족이 메시아적인 인류가 등장하기 위해 현대 인류 사이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19]
1916년 "개념과 현실"이라는 편지에서 부버는 시온주의 운동 내의 민족주의, 메시아주의, 히브리어 문제를 다루었다.[20] 그는 민족주의는 자연 현상이 아니며, 시오니즘은 민족주의가 아닌 종교성에 중심을 둔 운동이라고 주장했다.[21] 또한, 시오니즘 내의 메시아 운동은 디아스포라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유대인과 반시오니스트 세력에 의해 가려져 있다고 보았다.[22] 히브리어의 중요성에 대해 부버는 "히브리어는 무엇보다도 일상어가 아니라 유대교의 숭고한 가치를 완전히 흡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믿었다.[23]
1920년대 초, 부버는 양민족 유대-아랍 국가를 옹호하며, 유대인들이 "아랍 민족과 평화와 형제애 속에서 살고, 공통의 조국을 두 민족 모두 자유로운 발전을 할 수 있는 공화국으로 발전시키려는 열망"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24] 그는 시오니즘을 단순한 민족주의 운동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고, 아랍인에 대한 유대인의 지배로 특징지어지지 않는 모범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25] 그는 문화 시오니스트인 아하드 하암의 영향을 받았다.[25] 1925년, 그는 유다 레온 매그너스와 함께 양민족 국가 건설을 옹호하는 단체인 브리트 샬롬 (평화의 언약)을 창설하는 데 관여했다.[25]
1929년 에세이 "팔레스타인에서의 민족의 고향과 민족 정책"에서 부버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인의 권리를 탐구했다. 그는 이스라엘에 국가를 건설할 시오니스트의 권리가 고대 조상과의 연결, 유대인들이 최근 몇 년 동안 토지를 개척해 온 사실, 유대 국가가 유대교의 문화적 중심지이자 새로운 사회 조직을 창조하기 위한 모델(예: 키부츠)로서 제공하는 미래 전망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27] 부버는 생존을 위해 불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불의가 없이는 삶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삶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순간 시작된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강요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28] 그는 이 관점을 사용하여 잠재적 공존과 민족적 독립의 조합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양민족주의를 옹호했다.[29]
1905년부터 부버는 출판사 뤼텐 & 로닝에서 강사로 일하며 사회 심리학 모노그래프 시리즈인 ''Die Gesellschaft (Schriftenreihe)/Die Gesellschaftde''의 완성을 시작하고 감독했다. 1916년, 그는 베를린에서 헤펜하임으로 이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유대인 전국 위원회(Jewish National Committee)를 설립하여 동유럽 유대인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35] 또한, 1924년까지 유대 월간지인 ''데어 유데(Der Jude)'' (독일어로 "유대인")의 편집자로 활동했다. 1921년, 부버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와 긴밀한 관계를 시작했고, 1922년에는 로젠츠바이크의 유대교 학습 하우스(Lehrhaus)에서 협력했다.[36]
1923년, 부버는 존재에 관한 유명한 에세이인 ''나와 너(Ich und Du)'' (나중에 영어로 ''I and Thou''로 번역됨)를 썼다. 1925년, 그는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와 함께 히브리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번역을 ''Verdeutschung'' ("독일어화")라고 불렀는데, 이는 문학적인 독일어를 항상 사용하지 않고, 다가치 히브리어 원본을 존중하기 위해 새롭고 역동적인 동등한 어구를 찾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1926년과 1930년 사이에 부버는 분기별로 발행되는 ''디 크레아투어''(Die Kreatur) ("창조물")를 공동 편집했다.[37]
1930년, 부버는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Johann Wolfgang Goethe University Frankfurt am Main)의 명예 교수가 되었으나,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에 권력을 잡자 항의의 의미로 교수직에서 사임했다. 1933년 10월 4일, 나치 당국은 그에게 강의를 금지했고, 1935년에는 ''Reichsschrifttumskammer''(국가 사회주의 작가 협회)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유대인 성인 교육 중앙 사무소를 설립하여 독일 정부가 유대인에게 공교육 참여를 금지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38] 나치 행정부는 이 기관을 점점 더 방해했다.
1938년, 부버는 독일을 떠나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에 정착했다. 그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인류학 및 소개 사회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가 첫 학기 동안 진행한 강의는 책 ''인간의 문제'' (''Das Problem des Menschen'')로 출판되었다.[39][40] 이 강의에서 그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철학적 인류학에서 중심적인 질문이 되었는지 논의했다.[41] 그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문제와 아랍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했으며, 그의 성경, 철학 및 하세딕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과 유대인을 위한 이원적 국가를 목표로 하는 단체인 ''이후드(Ihud)''의 회원이 되었다.
2. 3. 이스라엘 이주와 말년 (1938년 ~ 1965년)
1938년 예루살렘으로 이주한[38] 부버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인류학과 사회학을 강의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39][40] 그는 시오니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켰고, 정치 참여를 늘렸다.[30] 1942년에는 이중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이후드당을 공동 설립했다.[30] 그는 하임 바이츠만, 막스 브로드, 후고 베르그만, 펠릭스 벨츠 등 유럽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시오니스트 및 철학자들과 수십 년간 우정을 나누었다.[30]
부버는 1948년 논문 "시오니즘과 시오니즘"에서 문화적 시오니즘과 정치적 시오니즘의 경쟁적인 경향을 평가했다.[30] 그는 "진정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것"과 "정상화"라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제시하며, "정상"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에는 토지, 언어, 독립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31] 부버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데 성공할수록 영적, 문화적 부활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정치 구조를 둘러싼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31]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부버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더 넓은 "근동" 국가 연합에 참여할 것을 옹호했다.[32] 그는 이스라엘이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고향을 개발하고 공유된 문제의 연방 관리를 수행하는 사업에 모두 연합할 수 있는" "근동"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33] 그는 "그 성약에 힘입어 우리는 다시 한번 근동 국가 연합으로 돌아가 근동 경제에 통합된 경제를 건설하고, 근동의 삶의 틀 안에서 정책을 수행하며, 신의 뜻에 따라 '살아있는 사상'을 다시 한번 근동에서 세상으로 내보내기를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33]
부버는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의 많은 정책과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특히 아랍 난민의 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과 같은 최고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3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부버는 유럽과 미국에서 강연 투어를 시작했다. 1952년에는 융(Jung)과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했다.[43] 1965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망했다.
3. 사상
부버의 암시적이고 때로는 시적인 문체는 하시디즘과 중국의 이야기의 재현, 성경 주석, 그리고 형이상학적 대화와 같은 그의 주요 테마를 특징지었다. 문화 시오니스트였던 부버는 독일과 이스라엘의 유대인 및 교육 공동체에서 활동했다. 그는 또한 팔레스타인에서 양국 해결책을 강력하게 지지했으며,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에는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지역 연합을 지지했다. 그의 영향력은 특히 사회 심리학, 사회 철학, 종교적 실존주의 분야에서 인문학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부버의 시오니즘에 대한 태도는 "히브리 인본주의"의 비전을 장려하려는 그의 열망과 관련이 있었다.[13] 로렌스 J. 실버스타인에 따르면, "히브리 인본주의"라는 용어는 "부버의 민족주의 형태를 공식 시오니스트 운동의 그것과 구별"하고 "이스라엘의 문제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의 독특한 형태일 뿐임을 지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별개의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과제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과제와 불가피하게 연결되었다.[14]
== 대화 철학 ==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묘사한 대화적 실존에 대한 논문으로 유명하다.[44] 그의 저서는 종교적 의식, 현대성, 악의 개념, 윤리, 교육 및 성경 해석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45] 부버는 "철학자"나 "신학자"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개인적인 경험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논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46]
부버의 사회 철학은 선취의 관점에서 무정부주의와 일치하지만, 부버는 생전에 이러한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부인했으며 제한된 조건에서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했다.[47][48]
《나와 너》''(Ich und Du)''에서,[44] 마르틴 부버는 인간 존재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제시했다.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과 키르케고르의 ''단독자''에서 영감을 받은 부버는 만남으로서의 존재라는 전제에 따라 연구를 진행했다.[49] 그는 이러한 철학을 의식, 상호작용, 그리고 개인이 다른 개인, 무생물체, 그리고 모든 현실과 소통하는 방식을 분류하기 위해 '나-너'(Ich-Du)와 '나-그것'(Ich-Es)이라는 단어 쌍을 사용하여 설명했다. 철학적으로, 이 단어 쌍은 존재 방식, 특히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고 그 존재를 실현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아이디어를 표현한다. 부버가 ''나는 너''에서 주장하듯이, 사람은 항상 이 두 방식 중 하나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
부버가 이중적인 존재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모티프는 대화('나-너')와 독백('나-그것')이다.[51] 소통, 특히 언어 지향적인 소통의 개념은 은유를 통해 대화/독백을 설명하고 인간 존재의 대인 관계적 본질을 표현하는 데 모두 사용된다.
''Ich-Du''("나-너" 또는 "I-Thou", 매우 개인적이고 연결된 의미의 '너'. 독일어 'Du'는 '너'를 의미하지만, 보통 가까운 친척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에게만 사용된다.)는 두 존재의 상호적이고 전체적인 존재를 강조하는 관계이다. 이는 구체적인 만남이며, 두 존재가 서로를 자격이나 객관화 없이 진정한 존재로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너 만남에서 무한함과 보편성은 단순히 개념이 아닌 실제가 된다.[1] 부버는 ''Ich-Du'' 관계가 어떠한 구성도 가지지 않으며 어떠한 내용도 전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상생활에서 ''Ich-Du''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두 연인, 관찰자와 고양이, 저자와 나무, 그리고 기차 안의 두 낯선 사람 등의 예시가 사용된다.
부버는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Ich-Du''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신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무엇이든 또는 누구와든 맺는 ''Ich-Du''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신과의 영원한 관계와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나-너 관계를 신과 맺기 위해, 사람은 그러한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에 열려 있어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부버는 우리가 나-너에 열려 있다면, 신이 결국 우리의 환영에 응답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주장한다.
''Ich-Es'' ("나-그것") 관계는 ''Ich‑Du'' 관계와 정반대이다. ''Ich‑Du'' 관계에서는 두 존재가 서로 만나지만, ''Ich‑Es'' 관계에서는 실제로 만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눈앞에 있는 존재의 개념이나 개념화에 직면하고 그것을 객체로 취급한다. ''Ich‑Es'' 관계는 사실 자신과의 관계이며, 대화가 아닌 독백이다.
부버는 인간의 삶이 ''Ich‑Du''와 ''Ich‑Es'' 사이의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Ich‑Du'' 경험은 드물다고 주장했다. 부버는 현대성의 다양한 문제점(예: 고립, 비인간화 등)을 진단하면서, 순전히 분석적이고 물질적인 존재관의 확장이 인간 사이에서도 ''Ich‑Es'' 관계를 옹호하는 핵심이라고 믿었다.
마르틴 부버의 사상은 "대화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한다. 유대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것으로, "나"와 "너"가 서로 대화함으로써 세계가 열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버에 따르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경험이나 지식은 "그것"이라는 낯선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나"는 "그것"과 인간 소외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나-그것" 관계를 대신하여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너" 관계이며, 세계의 깊숙한 곳에 있는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는 것이다. 부버는 유대 신비주의나 독일 신비주의와 유사한 사상을 발전시켰지만, 인간은 현세에 사는 존재인 이상 신비주의가 설파하는 "신인합일"을 절대적인 경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 하시디즘 연구 ==
마르틴 부버는 하시디즘의 학자, 해석가, 번역가였다. 그는 하시디즘을 유대교의 문화적 갱신의 원천으로 보았으며, 공동체, 대인 관계, 그리고 일상적인 활동(예: 노동자의 도구와의 관계)의 의미를 강조하는 하시디즘 전통의 예시들을 자주 인용했다. 부버에 따르면, 하시디즘의 이상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며, 일상적인 습관과 종교적 경험 사이에 뚜렷한 분리가 없는 상태를 지향했다. 이는 인간 존재의 기반을 대화적 관계로 간주하는 부버의 인류학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06년, 부버는 유명한 하시디즘의 랍비이자 레베인 브레슬로프의 나흐만 랍비의 이야기를 부버가 신-하시디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모음집인 ''라비 나흐만의 이야기''를 출판했다. 2년 후, 부버는 하시디즘의 창시자인 바알 쉠 토브의 이야기를 담은 ''바알 쉠의 전설''을 출판했다.
== 시온주의와 양민족 국가론 ==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한 부버는 정치 참여를 늘리고 시오니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발전시켰다. 1942년 그는 이중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이후드당을 공동 설립했다. 하임 바이츠만, 막스 브로드, 후고 베르그만, 펠릭스 벨츠 등 유럽 시절부터 1940년대에서 1960년대의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우정을 나눈 시오니스트 및 철학자들과 교류하였다.[30]
1948년 논문 "시오니즘과 시오니즘"에서 부버는 문화적 시오니즘과 정치적 시오니즘의 경쟁적인 경향을 평가했다.[30] 그는 "진정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것"과 "정상화" 과정으로서 "국가에는 토지, 언어, 독립이 필요하다"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요약했다.[31] 부버에 따르면 유대인과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데 성공할수록 영적, 문화적 부활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정치 구조를 둘러싼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될 위협이 있다고 보았다.[31]
이스라엘 건국 후, 부버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더 넓은 "근동" 국가 연합에 참여할 것을 옹호했다.[32]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이중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고향을 개발하고 공유된 문제의 연방 관리를 수행하는 사업에 모두 연합할 수 있는" "근동"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33]
이 시기 동안 부버는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의 많은 정책과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특히 아랍 난민의 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과 같은 최고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34]
== 사회 철학 ==
마르틴 부버의 사상은 "대화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며, 이는 유대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여겨진다.[44] 부버는 ''나와 너''에서 묘사한 대화적 실존에 대한 논문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서는 종교적 의식, 현대성, 악의 개념, 윤리, 교육 및 성경 해석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45]
부버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경험이나 지식은 "그것"이라는 낯선 존재일 뿐이며, "나"는 "그것"과 아무리 관련되어도 인간 소외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나-그것" 관계 대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너" 관계이며, 세계 깊숙한 곳의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대상으로서 일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자신을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 즉 대화를 통해 "영원한 숨결"을 감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상은 유대 신비주의나 독일 신비주의와 유사하며, 부버는 양쪽 전통을 계승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부버는 인간은 현세에 사는 존재인 이상 신비주의가 설파하는 "신인합일"을 절대적인 경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경지를 절대적인 것으로 한다면, 황홀경에서 벗어난 일상에서는 어떤 악을 범해도 괜찮아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통상의 인간에게는 일상생활이 더 중요하며, 거기에서 절대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유지하는 방법의 고찰이 "대화"로 발전해 갔다고 생각된다.
부버는 "철학자"나 "신학자"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아이디어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에만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논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46] 정치적으로 부버의 사회 철학은 선취의 관점에서 무정부주의와 일치하지만, 부버는 생전에 이러한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부인했으며 제한된 조건에서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했다.[47][48]
3. 1. 대화 철학
마르틴 부버는 그의 저서 《나와 너》에서 묘사한 대화적 실존에 대한 논문으로 유명하다.[44] 그의 저서는 종교적 의식, 현대성, 악의 개념, 윤리, 교육 및 성경 해석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45] 부버는 "철학자"나 "신학자"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개인적인 경험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에 대해 논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46]부버의 사회 철학은 선취의 관점에서 무정부주의와 일치하지만, 부버는 생전에 이러한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부인했으며 제한된 조건에서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했다.[47][48]
《나와 너》''(Ich und Du)''에서,[44] 마르틴 부버는 인간 존재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제시했다.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과 키르케고르의 ''단독자''에서 영감을 받은 부버는 만남으로서의 존재라는 전제에 따라 연구를 진행했다.[49] 그는 이러한 철학을 의식, 상호작용, 그리고 개인이 다른 개인, 무생물체, 그리고 모든 현실과 소통하는 방식을 분류하기 위해 '나-너'(Ich-Du)와 '나-그것'(Ich-Es)이라는 단어 쌍을 사용하여 설명했다. 철학적으로, 이 단어 쌍은 존재 방식, 특히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고 그 존재를 실현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아이디어를 표현한다. 부버가 ''나는 너''에서 주장하듯이, 사람은 항상 이 두 방식 중 하나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
부버가 이중적인 존재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모티프는 대화('나-너')와 독백('나-그것')이다.[51] 소통, 특히 언어 지향적인 소통의 개념은 은유를 통해 대화/독백을 설명하고 인간 존재의 대인 관계적 본질을 표현하는 데 모두 사용된다.
''Ich-Du''("나-너" 또는 "I-Thou", 매우 개인적이고 연결된 의미의 '너'. 독일어 'Du'는 '너'를 의미하지만, 보통 가까운 친척과 같이 밀접하게 연결된 사람에게만 사용된다.)는 두 존재의 상호적이고 전체적인 존재를 강조하는 관계이다. 이는 구체적인 만남이며, 두 존재가 서로를 자격이나 객관화 없이 진정한 존재로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너 만남에서 무한함과 보편성은 단순히 개념이 아닌 실제가 된다.[1] 부버는 ''Ich-Du'' 관계가 어떠한 구성도 가지지 않으며 어떠한 내용도 전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일상생활에서 ''Ich-Du''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두 연인, 관찰자와 고양이, 저자와 나무, 그리고 기차 안의 두 낯선 사람 등의 예시가 사용된다.
부버는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Ich-Du''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신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무엇이든 또는 누구와든 맺는 ''Ich-Du''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신과의 영원한 관계와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나-너 관계를 신과 맺기 위해, 사람은 그러한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에 열려 있어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부버는 우리가 나-너에 열려 있다면, 신이 결국 우리의 환영에 응답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주장한다.
''Ich-Es'' ("나-그것") 관계는 ''Ich‑Du'' 관계와 정반대이다. ''Ich‑Du'' 관계에서는 두 존재가 서로 만나지만, ''Ich‑Es'' 관계에서는 실제로 만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눈앞에 있는 존재의 개념이나 개념화에 직면하고 그것을 객체로 취급한다. ''Ich‑Es'' 관계는 사실 자신과의 관계이며, 대화가 아닌 독백이다.
부버는 인간의 삶이 ''Ich‑Du''와 ''Ich‑Es'' 사이의 진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실제로 ''Ich‑Du'' 경험은 드물다고 주장했다. 부버는 현대성의 다양한 문제점(예: 고립, 비인간화 등)을 진단하면서, 순전히 분석적이고 물질적인 존재관의 확장이 인간 사이에서도 ''Ich‑Es'' 관계를 옹호하는 핵심이라고 믿었다.
마르틴 부버의 사상은 "대화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한다. 유대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것으로, "나"와 "너"가 서로 대화함으로써 세계가 열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버에 따르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경험이나 지식은 "그것"이라는 낯선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나"는 "그것"과 인간 소외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나-그것" 관계를 대신하여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너" 관계이며, 세계의 깊숙한 곳에 있는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는 것이다. 부버는 유대 신비주의나 독일 신비주의와 유사한 사상을 발전시켰지만, 인간은 현세에 사는 존재인 이상 신비주의가 설파하는 "신인합일"을 절대적인 경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3. 2. 하시디즘 연구
마르틴 부버는 하시디즘의 학자, 해석가, 번역가였다. 그는 하시디즘을 유대교의 문화적 갱신의 원천으로 보았으며, 공동체, 대인 관계, 그리고 일상적인 활동(예: 노동자의 도구와의 관계)의 의미를 강조하는 하시디즘 전통의 예시들을 자주 인용했다. 부버에 따르면, 하시디즘의 이상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강조하며, 일상적인 습관과 종교적 경험 사이에 뚜렷한 분리가 없는 상태를 지향했다. 이는 인간 존재의 기반을 대화적 관계로 간주하는 부버의 인류학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1906년, 부버는 유명한 하시디즘의 랍비이자 레베인 브레슬로프의 나흐만 랍비의 이야기를 부버가 신-하시디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모음집인 ''라비 나흐만의 이야기''를 출판했다. 2년 후, 부버는 하시디즘의 창시자인 바알 쉠 토브의 이야기를 담은 ''바알 쉠의 전설''을 출판했다.
마르틴 부버의 사상은 "대화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한다. 대화의 철학이란 "나"와 "너"가 서로 대화함으로써 세계가 열린다는, 간단히 말해 유대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세련되게 다듬은 것으로 여겨진다.
부버에 따르면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경험이나 지식은 "그것"이라는 낯선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나"는 아무리 "그것"과 관련되어도 인간 소외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나-그것" 관계를 대신하여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너" 관계이며, 세계의 깊숙한 곳에 있는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대상으로서 일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자신을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 즉 대화를 통해 그 "영원한 숨결"을 감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이 사상은 유대 신비주의나 독일 신비주의와 유사하며, 양쪽의 전통을 계승한 부버는 이들로부터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부버는 인간은 현세에 사는 존재인 이상 신비주의가 설파하는 "신인합일"을 절대적인 경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경지를 절대적인 것으로 한다면, 황홀경에서 벗어난 일상에서는 어떤 악을 범해도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통상의 인간에게는 일상생활이 더 중요하며, 거기에서 절대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유지하는 수법의 고찰이 "대화"로 발전해 갔다고 생각된다.
3. 3. 시온주의와 양민족 국가론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한 부버는 정치 참여를 늘리고 시오니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계속 발전시켰다. 1942년 그는 이중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이후드당을 공동 설립했다. 하임 바이츠만, 막스 브로드, 후고 베르그만, 펠릭스 벨츠 등 유럽 시절부터 1940년대에서 1960년대의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우정을 나눈 시오니스트 및 철학자들과 교류하였다.[30]
1948년 논문 "시오니즘과 시오니즘"에서 부버는 문화적 시오니즘과 정치적 시오니즘의 경쟁적인 경향을 평가했다.[30] 그는 "진정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것"과 "정상화" 과정으로서 "국가에는 토지, 언어, 독립이 필요하다"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요약했다.[31] 부버에 따르면 유대인과 이스라엘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데 성공할수록 영적, 문화적 부활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정치 구조를 둘러싼 전쟁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될 위협이 있다고 보았다.[31]
이스라엘 건국 후, 부버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보다 더 넓은 "근동" 국가 연합에 참여할 것을 옹호했다.[32] 그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이중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동의 고향을 개발하고 공유된 문제의 연방 관리를 수행하는 사업에 모두 연합할 수 있는" "근동"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33]
이 시기 동안 부버는 새로운 이스라엘 정부의 많은 정책과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특히 아랍 난민의 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과 같은 최고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34]
3. 4. 사회 철학
마르틴 부버의 사상은 "대화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며, 이는 유대교의 교리를 철학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여겨진다.[44] 부버는 ''나와 너''에서 묘사한 대화적 실존에 대한 논문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서는 종교적 의식, 현대성, 악의 개념, 윤리, 교육 및 성경 해석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었다.[45]부버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경험이나 지식은 "그것"이라는 낯선 존재일 뿐이며, "나"는 "그것"과 아무리 관련되어도 인간 소외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나-그것" 관계 대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너" 관계이며, 세계 깊숙한 곳의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적 존재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대상으로서 일방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자신을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 즉 대화를 통해 "영원한 숨결"을 감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상은 유대 신비주의나 독일 신비주의와 유사하며, 부버는 양쪽 전통을 계승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부버는 인간은 현세에 사는 존재인 이상 신비주의가 설파하는 "신인합일"을 절대적인 경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경지를 절대적인 것으로 한다면, 황홀경에서 벗어난 일상에서는 어떤 악을 범해도 괜찮아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통상의 인간에게는 일상생활이 더 중요하며, 거기에서 절대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유지하는 방법의 고찰이 "대화"로 발전해 갔다고 생각된다.
부버는 "철학자"나 "신학자"라는 칭호를 거부하며, 아이디어가 아닌 개인적인 경험에만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논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46] 정치적으로 부버의 사회 철학은 선취의 관점에서 무정부주의와 일치하지만, 부버는 생전에 이러한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부인했으며 제한된 조건에서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했다.[47][48]
4. 주요 저서
마르틴 부버의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 《나와 너》 (Ich und Du, 1923년)
- 《사람들의 문제》 (Das Problem des Menschen, 1948년)
- ''Die Erzählungen der Chassidim'', 1949.
- ''Reden über Erziehung'', 1953.
- ''Der Jude und sein Judentum'', 1963.
- ''nachfolge'', 1937.
- ''Gemeinsames Leben'', 1939.
- 1937, 『나와 너』, 로널드 그레고르 스미스(Ronald Gregor Smith) 번역, 에든버러: T. and T. Clark. 2판 뉴욕: Scribners, 1958. Scribner Classics 1판 뉴욕, NY: Scribner, 2000, c1986
- 1952, 『신의 몰락』, 뉴욕: Harper and Bros. 2판 웨스트포트, 코네티컷: Greenwood Press, 1977.
- 1952, 『선과 악』, 뉴욕: Scribner
- 1957, 『길을 가리키며』, 모리스 프리드먼(Maurice Friedman) 번역, 뉴욕: Harper, 1957, 2판 뉴욕: Schocken, 1974.
- 1960, 『하시디즘의 기원과 의미』, M. 프리드먼 번역, 뉴욕: Horizon Press.
- 1964, 『다니엘: 실현에 관한 대화』, 뉴욕, Holt, Rinehart and Winston.
- 1965, 『인간의 지식』, 로널드 그레고르 스미스(Ronald Gregor Smith)와 모리스 프리드먼(Maurice Friedman) 번역, 뉴욕: Harper & Row. 2판 뉴욕, 1966.
- 1966, 『응답의 길: 마르틴 부버; 그의 저작 선집』, N. N. 글레이저(N. N. Glatzer) 편집. 뉴욕: Schocken Books.
- 1967a, 『믿는 휴머니즘: 나의 유언』, M. 프리드먼(M. Friedman)의 Nachlese (하이델베르크 1965) 번역, 뉴욕: Simon and Schuster.
- 1967b, 『유대교에 관하여』, 나훔 글레이저(Nahum Glatzer) 편집, 에바 조스페(Eva Jospe) 외 번역, 뉴욕: Schocken Books.
- 1968, 『성경에 관하여: 열여덟 개의 연구』, 나훔 글레이저(Nahum Glatzer) 편집, 뉴욕: Schocken Books.
- 1970a, 『나와 너』,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의 서문 “나와 너”와 주석이 포함된 새로운 번역, 뉴욕: Scribner's Sons.
- 1970b, 『맘레: 종교에 관한 에세이』, 그레타 호르트(Greta Hort) 번역, 웨스트포트, 코네티컷: Greenwood Press.
- 1970c, 『마르틴 부버와 연극』, 마르틴 부버의 "미스터리 플레이" 엘리야(Elijah) 포함, 모리스 프리드먼(Maurice Friedman) 편집 및 번역, 서론 에세이 3편 포함, 뉴욕, Funk & Wagnalls.
- 1972, 『만남: 자전적 단편』. 라 살, 일리노이: Open Court.
- 1973a, 『시온에 관하여: 한 아이디어의 역사』, 나훔 N. 글레이저(Nahum N. Glatzer)의 새로운 서문 포함, 독일어에서 번역, 스탠리 굿먼(Stanley Godman) 번역, 뉴욕: Schocken Books.
- 1973b, 『만남』, 모리스 프리드먼(Maurice Friedman) 편집, 서론 및 참고 문헌 포함, 라 살, 일리노이: Open Court Pub. Co. 3판. 런던, 뉴욕: Routledge, 2002.
- 1983, 『두 민족의 땅: 유대인과 아랍인에 대한 마르틴 부버』, 폴 R. 멘데스-플로르(Paul R. Mendes-Flohr) 편집, 해설 포함, 뉴욕: Oxford University Press. 2판 글로스터, 매사추세츠: *Peter Smith, 1994
- 1985, 『황홀한 고백』, 폴 멘데스-플로르(Paul Mendes-Flohr) 편집, 에스더 캐머런(Esther Cameron) 번역, 샌프란시스코: Harper & Row.
- 1991a, 『중국 설화: 장자, 격언 및 우화, 중국 귀신 및 사랑 이야기』, 알렉스 페이지(Alex Page) 번역, 아이린 에버(Irene Eber) 서론, 애틀랜틱 하이랜드, N.J.: Humanities Press International.
- 1991b, 『하시딤의 이야기』, 하임 포토크(Chaim Potok) 서문, 뉴욕: Schocken Books, Pantheon 배포.
- 1992, 『상호 주관성과 문화적 창의성에 관하여』, S.N. 아이젠슈타트(S.N. Eisenstadt) 편집 및 서론, 시카고: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1994, 『성서와 번역』, 마르틴 부버와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로렌스 로젠월드(Lawrence Rosenwald)와 에버렛 폭스(Everett Fox) 번역. 블루밍턴: Indiana University Press.
- 1996, 『유토피아의 길』, R.F. 헐(R.F. Hull) 번역. 시러큐스: Syracuse University Press.
- 1999a, 『첫 번째 부버: 마르틴 부버의 젊은 시온주의 저작』, 길랴 G. 슈미트(Gilya G. Schmidt) 편집 및 독일어에서 번역, 시러큐스, N.Y.: Syracuse University Press.
- 1999b, 『심리학과 정신 요법에 관한 마르틴 부버: 에세이, 편지 및 대화』, 주디스 부버 아가시(Judith Buber Agassi) 편집, 폴 로아진(Paul Roazin) 서문, 뉴욕: Syracuse University Press.
- 1999c, 『곡과 마곡: 소설』, 루드비히 루이손(Ludwig Lewisohn) 번역, 시러큐스, NY: Syracuse University Press.
- 2002a, 『바알-셈의 전설』, 모리스 프리드먼(Maurice Friedman) 번역, 런던: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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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비 나흐만의 이야기》 (1906)
- 《다섯 번째 문》 (1907)
- 《바알 셈의 전설》 (1908)
- 《황홀한 고백》 (1909)
- 《중국 유령과 사랑 이야기》 (1911)
- 《다니엘 - 실현에 관한 대화》 (1913)
- 《유대교 운동 - 1900-1915년의 논문 및 연설 모음》 (1916)
- 《유대교 정신에 관하여 - 연설 및 찬사》 (1916)
- 《말, 가르침, 노래 - 세 가지 예시》 (1917)
- 《사건과 만남》 (1917)
- 《위대한 마기드와 그의 계승》 (1922)
- 《유대교에 관한 연설》 (1923)
- 《나와 너(Ich und Du)》 (1923)
- 번역: 나와 너(Ich und Du) - 발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 번역 (터치스톤: 1970)
- 《숨겨진 빛》 (1924)
- 《하스디즘 서적》 (1928)
- 《알려지지 않은 저작들에서》 (1928)
- 《대화》 (1932)
- 《이스라엘을 위한 투쟁 - 연설과 저작 1921-1932》 (1933)
- 《백 개의 하스디즘 이야기》 (1933)
- 《이스라엘의 위로 : 이사야서 40장부터 55장까지》 (1933);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 공저
- 《천사, 유령, 악마 이야기》 (1934)
- 《찬송가》 (1935);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 공저
- 《하스디즘의 해석 - 세 가지 시도》 (1935)
- 《19세기 비더마이어 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유대인의 수채화 그림으로 그린 요셉 전설》 (1935)
- 《성경과 그 독일어 번역》 (1936);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 공저
- 《깊은 곳에서 당신을 부르나이다 - 원본의 스물세 개의 시편》 (1936)
- 《다가올 것 : 메시아 신앙의 기원에 관한 연구 - 1. 하느님의 왕국》 (1936 ?)
- 《시간과 인식 - 1933-1935년 연설 및 논문》 (1936)
- 《목표로서의 시온과 과제로서의 시온 - 30년의 생각 - 국가주의에 관한 부록 연설과 함께》 (1936)
- 《청년들에게 보내는 말》 (1938)
- 《모세》 (1945)
- 《대화적 삶 - 철학 및 교육학 저작 모음》 (1947)
- 《인간의 길 : 하스디즘 가르침에 따라》 (1948)
- 《인간의 문제》 (1948, 히브리어 원본 1942)
- 《하스디즘의 이야기》 (1949)
- 《곡과 마곡 - 연대기》 (1949, 히브리어 원본 1943)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 한 아이디어의 역사》 (1950, 히브리어 원본 1944)
- 《예언자들의 믿음》 (1950)
- 《유토피아로 가는 길》 (1950)
- 《두 가지 믿음 방식》 (1950)
- 《원초적 거리와 관계》 (1951)
-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1952)
- 《선과 악의 이미지》 (1952)
- 《하스디즘의 메시지》 (1952)
- 《정의와 불의 - 몇몇 시편의 해석》 (1952)
- 《전환점에서 - 유대교에 관한 연설》 (1952)
- 《사회와 국가 사이》 (1952)
- 《진정한 대화와 평화의 가능성》 (1953)
- 《통찰력 : 저작들에서 모음》 (1953)
- 《교육에 관한 연설》 (1953)
- 《신의 어둠 - 종교와 철학의 관계에 대한 고찰》 (1953)
- 번역: ''신의 몰락: 종교와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1952, 하퍼앤로우)
- 《단서 - 에세이 모음》 (1953)
- 《지침서 - 성경의 새로운 독일어 번역》 (1954);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 공저
- 《대화적 원리에 관한 저작》 (''나와 너'', ''대화'', ''개인에게 던지는 질문'', ''인간관계의 요소'') (1954)
- 《예언의 시 - 시작과 종말》 (1955)
- 《인간과 그의 형상》 (1955)
- 《죄와 죄의식》 (1958)
- 《만남 - 자전적 단편》 (1960)
- 《로고스: 두 개의 연설》 (1962)
- 《추수》 (1965)
''중국 유령과 사랑 이야기''에는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된 ''요재지이(Strange Stories from a Chinese Studio)''가 포함되어 있다. 알렉스 페이지는 ''중국 유령과 사랑 이야기''를 "중국 이야기"로 번역하여 1991년 휴머니티스 프레스(Humanities Press)에서 출판했다.
''전집''(Werke) 3권 (1962–1964)
- 1권 ''철학 저술''(Schriften zur Philosophie) (1962)
- 2권 ''성서 저술''(Schriften zur Bibel) (1964)
- 3권 ''하 시두스 저술''(Schriften zum Chassidismus) (1963)
''마르틴 부버 전집''(Martin Buber Werkausgabe, MBW).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 / 이스라엘 과학 인문학 아카데미, 편집: 폴 멘데스-플로어(Paul Mendes-Flohr) & 페터 셰퍼(Peter Schäfer), 마티나 우르반(Martina Urban) 공저; 총 21권으로 계획됨 (2001–)
- 『나와 너』 우에다 시게오 역, 이와나미 문고, 1979년
- 『나와 너』 타구치 요시히로 역, 미스즈 서방, 신장판 2014년
:: 원판은 『부버 저작집』 전 10권. 약 반세기 전에 출판
- 『나와 너』 노구치 케이스케 역, 고단샤 학술 문고, 2021년. 원판은 소분사
5. 수상 및 영예
6. 영향 및 평가
마르틴 부버는 그의 사상과 저술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업적은 폭넓게 평가받고 있다. 부버의 사상과 관련된 연구 서적으로는 『부버 연구 사상의 성립 과정과 정열』, 『부버와 숄렘 유대 사상과 그 운명』, 『부버에게 배우다 「타자」와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30장』 등이 있다.
부버의 사상은 종교 철학, 교육학, 윤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은 유대교 종교 철학 연구에서 부버의 영향을 받았으며,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밖의 주체'라는 개념을 통해 부버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또한, 키요 마코토는 장 폴 사르트르의 후기 사상 연구에서 부버의 영향을 언급했다. 교육학 분야에서는 사이토 아키라가 부버의 교육 사상을 연구했으며, 오카다 케이지는 '관계의 교육학'에서 부버의 사상을 다루었다.
부버의 저작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읽히고 있다. 『망아의 고백』, 『평전 마르틴 부버 상·하』 등은 부버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그의 사상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 특히 개인 간의 소통과 관계, 공동체의 의미, 인간 존재의 본질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7.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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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間の問題』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63년
- 『ユダヤ精神講演集』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65년
- 『信仰の二つの型』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67년
- 『ハシディズム』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71년
- 『続・対話』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74년
- 『旧約聖書 ヘブライ語原典からの全訳』일본어 마르틴 부버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공역), 미스즈 서방, 2004년
- 『わが回想』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80년
- 『出会い』일본어 마르틴 부버 저, 야마모토 시치헤이 역, 미스즈 서방, 1987년
- 『現代ヘブライズムの父 マルチン・ブーバー』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 분게이슌주, 1975년
- 『マルチン・ブーバー研究』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 미스즈 서방, 1978년
- 『「私と汝」の思想』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 PHP 연구소, 1979년
- 『「我と汝」の解説』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 산토리 학예상 수상, 1979년
- 『ブーバー「対話」入門』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 산토리 학예상 수상, 1980년
- 『ブーバーを読む』일본어 야마모토 시치헤이, PHP 연구소, 1987년
- 『ブーバーとの対話』일본어 베르너 크라프트 저, 이타쿠라 토시유키 역, 총서 유니베르시타스·호세이 대학 출판국, ISBN 4-588-00066-7, 1975년
- 『ブーバー研究 思想の成立過程と情熱』일본어 (코바야시 세이키치 저, 창문사, 1978년 12월)
- 『ブーバーとショーレム ユダヤ思想とその運命』일본어 (카미야마 야스토시 저, 이와나미 서점, 2009년)
- 『ブーバーに学ぶ 「他者」と真にわかりあうための30章』일본어 (사이토 케이이치 저, 일본교문사, 2003년)
- 『ユダヤ教思想における悪 なぜ、いま「悪」なのか』일본어 (우에무라 만지 편저, 코기시 아키라·이케다 준·아카이 토시오 공저, 코요 서방, ISBN 4-7710-1502-3, 2004년 6월)
- 『人は独りではない ユダヤ教宗教哲学の試み』일본어 (A.J. 헤셸 저, 모리이즈미 히로지 역, 쿄분칸, ISBN 4-7642-7177-X, 1998년 10월)
- 『人間を求めてさまよう神 ユダヤ教の哲学』일본어 (A.J. 헤셸 저, 모리이즈미 히로지 역, 쿄분칸, ISBN 4-7642-7180-X, 1998년 11월)
- 『外の主体』일본어 (에마뉘엘 레비나스 저, 고다 마사토 역, 미스즈 서방, ISBN 4-622-03077-2, 1997년 2월)
- 『彼らなしですむか 20世紀ドイツ・ユダヤ精神史の肖像』일본어 (한스 위르겐 슐츠 편, 야마시타 키미코 외 역, 신요사, ISBN 4-7885-0905-9,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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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援助すること 社会福祉実践を支える価値規範を問う』일본어 (후루카와 타카 준 외 저, 유히카쿠, ISBN 4-641-07654-5, 2002년 6월)
- 『教育思想の根底をさぐる 近代教育論の展開と課題』일본어 (세키가와 에츠오·키타노 아키오 저, 케이메이 출판, ISBN 4-87448-028-4,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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